– 블로그 이웃의 블로그에서 ‘그 해 여름 필립 로커웨이에게 일어난 소설 같은 일’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하고 표지에 있던 이름에 이끌려 검색을 시작했다. 박대겸. 알고 보니 니카노르 파라의 <시와 방시> 번역자였고, 조금 더 검색해보니 2018년도 이후 업로드가 끊긴 보라뇨 팬 블로그 <비바 보라뇨>의 운영자임을 알 수 있었다. 블로그 이웃은 이 소설은 걸작이며 두 번 읽었다고 덧붙였다. 책을 다 읽은 지금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브루클린에 사는 필립 록커웨이라는 재미없는 젊은이의 이야기다. 그는 레스토랑을 그만두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소설을 쓰고 싶어졌고, 그래서 소설을 쓰려고 한다. 이 단순한 타임라인이 소설의 전부이고, 요즘 한국 소설 하면 나올 법한 형식 실험과 한국적 풍토 묘사도 나오지 않는다. 웰벡(그는 데뷔작에서 묘사 자체를 생략하는 실험을 했다)과 하루키 초기작처럼 묘사가 매우 드물어 담백하고 지루할 정도다. 내가 이 소설에 매료된 이유는 소설의 주인공이 아무것도 모르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소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는 소설에 대해 하나하나 배운다. 성장은 지극히 하루키적인 주제이며, 아마도 하루키를 오늘날의 위대한 소설가로 남긴 이유일 것이다. 여기서 박대겸은 현실과 텍스트의 관계, 텍스트를 모방하는 현실이라는 단순한 구도를 가져온다. 필립은 다른 사람의 글을 따라 함으로써 배운다. 페렉, 레베카, 브레이너드. 필립이 소설 모임에서 소설이란 무엇인지, 쓰는 법을 배울 때 그는 인생에 대해 배운다. 읽기와 쓰기는 성장을 위한 도구가 된다. 보라뇨를 전혀 닮지 않았지만, ‘야만적 탐정’의 교훈을 완전히 숙지한 소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성장은 어렵다. 예를 들어 부뉴엘의 잊혀진 사람들의 밤거리처럼 아이가 아이의 머리를 박살내는 공간. 이런 세상에서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또 허구 자체를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수행적인 도구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해도 생소한 이름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있는데, 나는 이 소설이 너무 감동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결말이. -돌고래 출판사에서 악인의 서사가 나왔다. 나도 글 한 편 ‘나쁜 놈도 눈물 흘려야 하는 이유’를 올렸다. 다른 글들도 재미있고 또 논쟁적인 주제니까 많은 분들이 구매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수정주의 서부극을 주로 다뤘지만 특히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를 중심에 뒀다. 페킨파 하면 <와일드 번치>에서 키요시가 좋아하는 <케이블 호그의 발라드>나 밥 딜런이 나온 <관계의 종말>, 충격적인 복수활극 <와라기개> 같은 영화도 떠오르지만, 왠지 요즘 떠오르는 영화는 <알프레드 가르시아의 목을 가져와라>다. (내가 인생에서 처음 산 영화평론집) 박찬욱의 <오마주>에서는 영화 이름이 미친 듯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는 <알프레드 가르시아의 목을 가져와라>였다. 박찬욱이 특별히 애정을 표현해서인지, 영화 자체가 워낙 괴기해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워렌 오츠. 군대에서 PMP로 이 영화를 처음 봤어. 보스가 자신의 딸을 임신시킨 악한의 머리를 가져오라는 미션을 건다. 가르시아는 이미 죽은 뒤이며 이 시체에서 목을 베고 머리를 가져와야 한다. 오오츠가 가져가는 머리. 나중에 보스의 명령은 터무니없는 결과를 낳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 영화에서 가르시아의 머리는 낭만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사물이다. 머리에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영화의 마지막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무 의미도 없는 사물을 위해 100만달러와 21명의 목숨을 거는 것이다. 주인공의 목숨조차도. 나에게는 머리와 머리를 가져가는 행위는 일종의 비유처럼 느껴진다. 워렌 오츠(ウォーレン··オはーツ)는 정말 훌륭한 배우야. 몬테 헤르만의 서부극에서 오츠의 미소는 빛나지만, 나는 오츠가 투계중독의 승부사 역을 맡은 ‘투계사’를 좋아한다. 워런 오츠는 중견 배우 강남길 씨를 닮았다. 환한 미소. 그러고 보니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나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로도 친숙한 가토 다이스케는 전 국회의장 겸 의정부의 패왕 문희상 씨와 많이 닮았다.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에서 가토는 다카미네 히데코에게 혼인빙자 사기를 치는 나쁜 놈으로 나온다. 다카미네의 미모를 생각하면 가토에게 바람 맞는 것은 정말 어울리지 않지만, 가토 다이스케의 그 순수하고 세상 물정 모르고 어리바리한 표정이 그녀의 비극에 운명론적 뉘앙스를 더한다는 점에서. 하스미 시게히코였다면 계단에 대해 이야기했을 텐데, 나는 가토 다이스케(加加藤大輔)의 덧니가 기억에 남는다. 물론 마지막으로 계단을 오르는 다카미네 히데코의 모습도. 영화의 마지막, 그녀도 가토의 덧니, 계단과 함께 낭만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사물로 변한다. -얼마 전 유덕남(유튜브 읽어주는 남자)이라는 앤드류 테이트식 알파메일 담론 관련 유튜버가 “한국인들은 얼굴 공개에 난리를 친다.”는 식으로 말해 약간의 논란이 된 바 있다. 유덕남의 지향에 대한 호오를 떠나 그것이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실제로 사진 찍히는데 너무 예민하니까. 나는 외국에 살지 않아서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얼굴’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HBO에서 방영되는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하우 투 위 존 윌슨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추측할 뿐이다. 이 시리즈는 웨이브로 볼 수 있다(시즌 2). 존 윌슨이라는 제작자의 1인칭 시점 카메라로 이것저것 인생에 대한 궁금증과 그에 대한 해결책을 알려준다. 사프디 형제의 형? 아니면 동생? 트윗에서 이 시리즈가 거론되는 걸 봤어. 훌륭하다고. 에피소드는 「와인을 맛보다」와 같은 테마로 시작해, 어딘지 모르는 곳까지 계속 흐른다. 와인으로 전투식량, 스포츠음료, 스포츠음료로 큰돈을 번 재벌. 출발점과 전혀 다른 곳에 이른다. 도시 교향악 같은 스타일도 흥미롭다. 뉴욕 같은 곳에 사는 별난 사람들을 찍어 올린다. 길거리에서 노래하는 사람, 맨몸으로 줄넘기하는 사람. 우울한 불행을 주제로 삼지 않고 거창한 주제를 거론하지 않으며 너무 실험적이게도 – 블로그 이웃의 블로그에서 그해 여름 필립 록커웨이에게 일어난 소설 같은 일이란 제목의 책을 발견하고 표지에 있던 이름에 이끌려 검색을 시작했다. 박대겸. 알고 보니 니카노르 파라의 <시와 방시> 번역자였고, 조금 더 검색해보니 2018년도 이후 업로드가 끊긴 보라뇨 팬 블로그 <비바 보라뇨>의 운영자임을 알 수 있었다. 블로그 이웃은 이 소설은 걸작이며 두 번 읽었다고 덧붙였다. 책을 다 읽은 지금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브루클린에 사는 필립 록커웨이라는 재미없는 젊은이의 이야기다. 그는 레스토랑을 그만두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소설을 쓰고 싶어졌고, 그래서 소설을 쓰려고 한다. 이 단순한 타임라인이 소설의 전부이며 최근


